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 독일 (문단 편집) === 팽창주의 === ||[youtube(TTvC_OrXHWw)]|| || 재무장 시기에 군수공장을 시찰하는 나치 관료들 || [[케인즈]]적 경제 회생 정책을 통해 국내 사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나치 독일은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. 첫 번째 목표는 [[국제 연맹]]이 관할하던 라인강 연안의 공업도시 [[루르]]를 되찾아오는 것이었다. 이곳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[[비무장지대]]가 된 곳이었다. 1936년 히틀러는 빈약한 무장[* 군비 확장 선언을 한 지 얼마 안 지나서 당시 독일 국방군의 무장은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. 오죽하면 호전적인 독일 국방부도 [[프랑스군]]의 개입을 우려해 참패할까봐 이 도박을 말리려고 했다.]의 독일 국방군을 진주시키는 도박을 한다. 이는 조약의 위반 사항이었으나 전쟁을 피하려는 영국과 프랑스의 묵인 속에 이곳을 피 없이 되찾는 데 성공했다. 1938년 [[오스트리아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|오스트리아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]]을 선동하여 혼란을 조장, 오스트리아 정부를 무력화시켰다. 이후 독일 국방군을 진주시켜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[[오스트리아 연방국]]을 독일의 '오스트마르크 주'로 병합시켰다. 이를 [[안슐루스]]라고 한다. 19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인이 다수였던 주데텐란트를 독일령으로 할양하라고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협박을 했고, 동년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를 달래기 위해 체코 영토였던 주데텐란트에 대한 독일의 합병을 수용하는 [[뮌헨 협정]]을 맺었다. 이로서 히틀러는 다시 협상에서 승리했다.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에 '더 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겠다'라 했고, 그 서약서까지 영국과 프랑스에 제출했으나 실제로는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. 서약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1939년 여름, 히틀러는 폴란드에게 동프로이센과 독일 본국을 잇는 (역시 독일계가 상당수인) [[단치히 회랑]]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. 그러나 폴란드는 전쟁을 염두에 두며 총동원령을 내리는 등 독일의 단치히 회랑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. 이에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가 또 방관할 것[* [[가짜 전쟁]]을 보면 히틀러의 예상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.]이라는 생각을 했고, 폴란드와의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소련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. 이 조약을 맺고 독일은 1939년 9월 1일 [[폴란드 침공]]을 개시했다. 더이상 방관할 수 없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고, 결국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개막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